으앙망!

으앙 망했어!

나/일기

2024.12.31. 말일, 2024년

euangmang 2024. 12. 31. 21:06

2024년의 마지막 날을 맞이해버렸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일찍 연구실에서 벗어났다.

(사실 아무 이유 아님)

 

일찍 퇴근한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는데,

첫 번째 목적은 을지로로 향해 현상 맡긴 필름을 가져오는 것,

두 번째 목적은 부모님 댁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 외의 목적은 따로 있지 않았다.

물-론 퇴근 준비할 때까지만 해도...

 

그러다가 올해의 마지막 연구실 퇴근을 하던 중

급작스레 일몰을 찍고 싶어 응봉산으로 향했다.

예정되지 않은 일정이란.

 

응봉산은 세종대에서 그리 멀지 않다.

세종대학교 후문에서 2016번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만 가면

응봉현대아파트에 도착할 수 있고,

그곳에서 산책길을 통해 전망대까지 오르면 된다.

 

2024.12.31. FUJIFILM X-Pro3

하지만 나는 그보다 일찍 내렸다.

응봉동 주민센터였나...

그 근처에서 내려 경의중앙선 응봉역 방향으로 향했다.

겨울은 겨울인지 벌써부터 해가 저물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고

하루 내내 구름 한 점 없이 파랬던 하늘은

조금씩 붉은끼가 감돌기 시작했다.

 

2024.12.31. FUJIFILM X-Pro3

응봉역은 생각보다 외진 곳에 있었다.

출입구도 1, 2번 두 개뿐이었고,

출입구 자체도 조금은 협소한 느낌이었다.

뭐랄까 조그마한 동네만을 위한 역과 출입구 같은 느낌이랄까?

지도상으로만 봤을 땐 알지 못 했던 부분인데,

역시 뭐든 직접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일까...

 

2024.12.31. FUJIFILM X-Pro3

경의중앙선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 위로는 차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고,

교량의 양 옆으로 인도가 놓여 있어 높은 곳에서 주변을 시원하게 구경할 수 있었다.

 

2024.12.31. FUJIFILM X-Pro3

저무는 해의 따사로움을 받는 철도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생각과 감정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어 더욱 복잡스럽다.

있지도 않은 추억도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

 

2024.12.31. FUJIFILM X-Pro3

응봉역의 첫인상은 알 수 없는 정겨움이 묻어났다.

역사 창문을 통해 햇빛을 받는 개찰구는

금속성의 차가움이 사라지고

만지면 따뜻함이 전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도 개찰구를 좋아하곤 했는데(?)

이 시간대의 이 햇빛을 받으니 더욱 기분이 묘해지더라.

역시 없던 추억도 생길 것 같은 노을빛인가.

 

2024.12.31. FUJIFILM X-Pro3

창문이 서쪽으로 나있어서 그런지

노을빛이 더더욱 감각적으로 드리운 것 같았다.

어쩌면 이 타이밍에 이곳에 있던 나는

꽤나 운이 좋았을지도 모른다.

 

2024.12.31. FUJIFILM X-Pro3

하지만 응봉역에 사로잡혀 일몰을 놓칠 순 없었기에

이내 응봉산 전망대로 향했다.

응봉동 현대아파트 대로변 인도에서 산책로로 곧장 진입할 수 있는데,

전망대라는 표지를 보고 쭉쭉 올라가면 된다.

계단을 오지게 올랐는데, 허벅지가 터질 것만 같았고

찬 공기를 급히 마시다보니 폐가 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한 10여분 정도 오르다보니 전망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전망대는 역시 2024년의 마지막 일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들 어떤 마음들이었을까.

 

2024.12.31. FUJIFILM X-Pro3

세상이 너무 어지럽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느꼈으려나.

너무나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 일들은 끝맺음 없이 현재진행중이다.

 

2024.12.31. FUJIFILM X-Pro3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는지

나는 잘 알지 못 하지만,

적어도 나는 이 2024년의 마지막 해가

어지러운 이 상황을 모두 가져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24.12.31. FUJIFILM X-Pro3

어느덧 파란 하늘은 2024년과 작별을 하고

마지막 붉은 하늘이 점점 만연해졌다.

동시에 어둠이 짙어지고 있었다.

그 어둠이 좋지 않은 모든 것을 덮어줬으면 싶더라.

 

가끔은 어둠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빛은 반드시 드러나야 할 것을 비추고

어둠은 잊거나 떠나보내야 할 것을 덮어주고.

무책임한 망각이라기보단 쓸 데 없는 아픔을 가려준다는 느낌으로다가.

 

2024.12.31. FUJIFILM X-Pro3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터...

12월 31일과 1월 1일은 그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중 하나일 뿐이기에

이런 바램은 시간선상의 의미 없는 한 순간에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일 뿐일지도 모른다.

 

2024.12.31. FUJIFILM X-Pro3

그래도 바랄 순 있지 않을까.

불가능하더라도 바라거나 상상은 해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거의 다 저물어가는 해에 소원을 소소히 빌어봤다.

거지 같은 세상

 

2024.12.31. FUJIFILM X-Pro3

이윽고 붉은 하늘은 보라색으로 빛이 났다가

어둠으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결국 어디론가 열심히 나아가는 자동차의 라이트가 가장 밝은 존재가 되었다.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2024.12.31. FUJIFILM X-Pro3

망원렌즈를 장착하고 장노출을 이용해서 찍으면 참 멋있을텐데

준비를 제대로 해오기엔 이 상황이 즉흥적이기도 했고

살짝은 장비의 무게가 부담스럽기도 해서

큰 후회는 되지 않았다.

삼각대와 소니 바디 + 소니 렌즈를 챙겼다면

촬영 후 그냥 집으로 귀가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2024.12.31. iPhone 13 Pro

일몰을 적당히 즐긴 뒤 자리를 떴다.

망우삼림은 오후 7시까지만 열기 때문에 우선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올랐던 길을 다시 내려가던 중에

전망대 반대편 방향으로 좋은 풍경을 발견해서 사진으로 기록을 해보았다.

나중에 다시 오게 된다면 저곳을 향해 장노출을 제대로 찍어보리라.

 

2024.12.31. FUJIFILM X-Pro3

을지로3가역 바로 앞에 있는 망우삼림에 도착하여

현상된 필름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스캔본은 지난주에 이미 받았는데,

나중에 내가 따로 스캔을 해볼까 싶어서 필름도 수령하는 편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90mm 매크로 렌즈를 사긴 해야겠는데...돈이...

나중에 생각해봐야겠다.

 

2024.12.31. iPhone 13 Pro

분명 점심에 돈가스를 먹어서 든든했는데

저녁 여섯 시가 넘으니 배꼽시계가 명치를 때리더라.

가끔 네이버 지도를 보면서 여러 음식점을 눌러보곤 하는데,

얼마 전에 이남장이라는 설렁탕집을 찾았다.

블로그 리뷰 같은 걸 본 건 아니고, 그냥 노포 같아서 표시만 해두었더랬지.

 

을지로3가역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가면 이남장 을지로 본점이 있다.

설렁탕과 도가니탕, 수육 등을 판다.

가게는 오래돼서 약간은 허름하고 고기의 쿰쿰한 냄새가 가득했지만

설렁탕 맛은 진국이었다.

국물을 한 번 맛 본 순간 쿰쿰함은 사라짐과 동시에 깔끔했고 담백했다.

정말 의외였다.

생긴 건 쿰쿰내가 날 것만 같았거든.

 

 

무엇보다 고기의 양이 많았고 당면과 밥도 국물과 잘 어울렸다.

김치는 배추김치와 무김치가 있었고,

이미 잘게 썰린 파가 식탁마다 놓여 있었다.

소금으로 적당한 간을 하고 김치와 함께 먹으니

소주 좀 마실 수 밖에 없었다...

올해 여름에 서울 올라와서부터 먹은 국밥류 중 여기가 원탑이다.

 

2024.12.31. FUJIFILM X-Pro3

식사 후에는 지난주에 방문했던 카페에 한 번 더 방문하였다.

아마츄어작업실이라는 곳인데

적당히 아늑한 공간에 음악 선곡도 좋고

커피 맛도 상당하다.

물론 값이 싼 편은 아니지만

이 분위기를 즐기며 시간을 보내기엔 아깝지 않은 수준.

이곳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꺼내고 이 글을 작성했다.

 

이제 오늘의 마지막 목표인 부모님 댁으로 향할 차례다.

가야지. 2025년으로...

크게 기다려지진 않지만

올해의 마지막 해가 지면 아래로 떨어지면서

2024년의 좋지 않은 것들을 가져가줬길.

2024.12.31. FUJIFILM X-Pro3


 

 

이남장 을지로본점

 

 

 

망우삼림

 

 

 

아마츄어작업실 청계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