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기기: 필름 카메라 (기종 까먹음)
촬영 필름: Kodak Gold 200
촬영 시기: 2024년 상반기
최근 현상 맡겼던 필름들 중
어떤 카메라로 찍은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필름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 당시의 내 감정은 이미 잊은지 오래다.
그래서 현상 맡길 때만 해도
내가 어떤 의도와 어떤 생각을 갖고 촬영했는지
결과를 봐도 모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상이 완료된 결과물을 보며
이내 그 당시의 내 감정을 조금씩 되살릴 수 있었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저 당시에 내가 특별히 일기를 쓴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일상 속의 한 장면을 담은 것 뿐인데
그저 사진 한두 장으로 그때의 나를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대운동장 잔디밭에서 간이 의자를 펼쳐 여유를 보내는 한 쌍을 담는 나는
분명 저 여유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한편 부러워했을 것이다.
전남대학교 용봉탑 버스정류장 뒤쪽의 울타리에 피어난
빠알간 장미를 담는 나는
이렇게 그늘지고 햇볕이 자주 들지 않는 곳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그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사진은 단순히 하나의 정지된 화상을 담아낸다라고만 정의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사진은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정의를 품고 있다.
비록 사견이긴 하지만,
사진은 그 당시의 온도를 담을 수 있다.
빛으로 장면을 기록하는 사진은
빛의 특성을 일부 상속 받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제법 타당한 생각이지 않을까?
특히 야외에서 자연광, 즉 햇빛을 받는 경우에는
그 특성이 고스란히 사진에 묻어난다.
햇빛의 입사각과 대기 중에서의 산란 정도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빛의 온도감은 확연히 달라지는데,
노을이 질 때면 괜시리 따뜻한 느낌을 받는 것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실제로는 대낮이 노을 질 때보다 더 따뜻하고 뜨거울 것이다.
그래서 앞서 얘기한 그 따스함이라는 온도감은
실질적인 온도가 아닌
감정적인 온도에 해당한다.
적당한 예를 들기가 쉽지 않은데,
군중 속의 고독과 조금 비슷하려나.
아무리 내 주변이 와글벅적하고 시끄럽더라도
나는 고독감을 씹는 그 느낌.
아무리 나를 에워싸고 있는 공기가 따뜻하더라도
내 마음과 기분이 공허하다면
차가움을 느끼는 상황.
그래서 어떤 빛을 담느냐에 따라
사진이 전달하는 그 '감정의 온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동일한 장소라 하더라도
특정 시간대의 빛이 가져다주는 그 온도감이
전혀 다른 장소로 만들어준다.
정말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빛을 감정조작의 주범이라고 생각한다.
빛이 나에게 어떤 온도감을 주는지에 따라
세상이 달라보이기 때문이다.
햇빛이 머리 꼭대기에서 떨어질 때의 아이들을 보면
활기차고 밝고 힘이 느껴진다.
마치 햇빛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움직이는 장난감마냥.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이 맺히고
이들의 숨이 가빠지는 것을 사진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정적인 장면을 포착한다는 정의를 생각했을 때
역동적인 그 당시의 상황까지도 담을 수 있다는 것이 꽤나 모순적이다.
적당히 그늘진 곳에서의 한 사람이 받는 빛은
좀 더 차분한 느낌을 준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 수도 있고
잠시 일상에서의 도피를 원했던 것일 수도 있다.
받는 빛을 제외하고는 혼자 있다는 상황이 동일함에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전 사진과는 달리 여유로움과 싱그러움을 뿜어낸다.
결국 어떤 온도감을 포착했느냐에 따라
사진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한 방향만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내가 그 빛을, 그 빛이 주는 온도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을 했던 그 당시의 빛을 사진이 담아냈다면
아무리 따뜻하고 아련한 노을빛이라 하더라도
나에게는 불편하고 차가울 뿐이다.
뜨거웠던 해가 아래로 숨어들어
조금은 차갑고 눅눅해지는 기운만이 남게 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당시에 좋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면
되려 노을빛보다 더욱 아련하고 따뜻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결국 사진이 담는 빛과 나의 느낌은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빛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내가 그 빛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그 빛을 받아들일 당시에 내가 겪었던 경험과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진을 찍을 때 받던 빛에 따라서
피사체를 정하고
구도를 잡고
셔터스피드를 조절하고
조리개를 풀거나 조였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 당시의 빛은 나에게 어떤 특별한 감정을 일으켰고,
그 감정에 따라 나는 그 장면을 담아내고자 했을 것이다.
그 빛이 일으킨 내 감정에 따라 사진을 찍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보면 아무리 오래 됐건 초점이 맞지 않건 간에
다시금 그 감정과 기분이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진 한 장을 찍더라도
내 기분에 충실하게 찍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기분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충분한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한다.
내가 의도한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그 빛을 내가 느낀 그대로 담을 수 있도록.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얘기를 하겠지만,
우울하고 쓸쓸한 감정을 가진 상태로 카메라를 들었을 때엔
정말로 그 결과물에서는 동일한 감정이 느껴진다.
사실 결과를 처음 마주했을 때 살짝은 당황스러웠다.
대부분 초점이 나가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카메라에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하지만 몇 장 보다보니 촬영의 의도를 기억해냈다.
나는 시력이 꽤나 안 좋아 안경을 쓰고 있는데,
안경을 벗은 눈으로 본 세상을 담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마냥 쓸잘 데 없는 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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